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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덱체어에 관자놀이를 대고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내 농구화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뜻밖에도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 알리스 곁에서 내가 보내는 시간은 큰 의미예요. 하지만 삶이란게 그렇듯이, 난 내가 그녀 인생에서 그저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리란 것을 늘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날 믿어봐요. 그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몇 년이었으니까. 자 이제 결정된 거죠? " _P208

 

 

 

이야기의 주인공은 천재 과학자였으나 공항에서 마카롱을 팔고 있는 지발과 열 일곱 살, 강간을 당하는 과정에서 시각을 잃게 된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알리스, 그리고 그녀의 안내견 쥘이다. 여기에서 알리스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연상의 연인, 프레드와 동성커플로 등장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지발도, 알리스도, 쥘도 아닌 바로 알리스의 연인으로 나온 프레드였다. 프레드는 알리스를 사랑했다. 그녀가 시각장애인이었을 때도 그녀를 사랑했으며 그녀가 인공각막을 이식받아 시력을 다시 찾은 뒤에도 그녀를 사랑했으며 그녀가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함께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을 했다. 하지만, 알리스의 마음은 예전같지가 않았다. 

 

 

 

"멋진 산책이었어요. 고마워요, 프레드."

" 좋았어? 삐친 건 끝난 거야? "

" 난 안 삐쳤어요. 쥘에 대해서 생각한 것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쥘이 그립지 않아요? " 

" 내가 그리운 건 너야. 난 네가 옆에 없는 것만 같아..... 파리에 있을 때보다 더 끔찍해. 파리에서 넌 주의가 산만했고 다른 사람들만 바라봤어. 배에서는 나를 피했고. 여기서는 그마저도 아니야. 난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아. " 

.

.

.

 

" 난 예전과 똑같이 널 사랑해, 하지만  네가 사랑하는 척하는 거라면 난 절대 견디지 못할 거야. "

" 난 그런 척하지 않아요 프레드. 다만 지금 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다예요. "

" 갈림길에 서 있는 거지. 정상이야. 하지만 빨리 결정하도록 해. 빙글빙글 도는 거,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 

p169~172. 중간 생략. 

 

 

알리스는 젊고, 아름다웠고 프레드는 능력은 있었으나. 그래. 나이가 들어가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상상하던 모습과 자신이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다른 이들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제게 느끼지 못하는 연인의 행동. 알리스와 지발이 주인공이었기에 조연인 프레드의 감정 상태에 대해서는 그리 자세한 서술이 나오지 않았으나 짧게 서술되는 그것만으로도 그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나타나 버린 것이다. 알리스가 애타게 그리워 하던 쥘과 구세주마냥 그녀를 구해주었다던 남자가. 알리스는 그에게 끌림을 느꼈고 그 또한 알리스에게 반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모든 사람의 눈에도. 프레드는 그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질투를 하고 밀어내고 그 이를 싫어하고 연인을 잡고 매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아마 질투심과 불안감에 애인에게 나를 떠나지 말라며 매달리거나 먼저 이별을 고하고 그 뒤에 남는 미련과 이런 저런 감정의 잔여물들에 그네들의 행복을 빌어주기는 커녕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하지만, 프레드는. 지발이 괜찮은 남자인지를 확인하고 그가 괜찮다고 확인을 하자 알리스를 맡기는 것 뿐만 아니라 그에게 필요한 자본을 지원해주기까지 했다. 그러기가 쉬울까. 그럴 수 있을까.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럴 수가 있는 것일까. 

 

 

 

" 냉정하게 생각해보죠. 난 관대한 사람이 아니니까. 이건 내 전문 영역이야. 내가 원하지 않는 건, 바로 알리스가 거짓말쟁이의 속임수에 속아 거리에 나앉는 거죠. 알다시피 그녀는 삶의 어느 정도 수준에 익숙해져 있어요. 그런 종류의 일은 나 혼자 해결하죠. 중요한 경제적 결정이 필요할 땐 그게 낫거든요. 따라서 난 당신에게 경제적 부분을 제공하고 싶어요. 물론 당신이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조건 하에서. (중략) 만약 그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하면 당신을 세상을 제패하게 될 거고, 그러면 난 내 여왕을 당신에게 양보하죠. " P207

 

 

검은 활자들로 가지런하게 적힌 프레드의 말을 읽을 때마다 그 장면을 상상한다. 해변에서 강아지와 함께 뛰어 놀고 있는 사랑스러운 연인을 바라보며, 그녀가 새로이 마음에 두기 시작한 연적에게 당신에게 그러할 자격이 있으면 그녀를 당신에게 양보하고 그녀를 위하여 당신에게 지원을 하겠다고 하는 프레드의 모습을 말이다. 글을 읽을 때마다 자꾸 눈물이 차오른다. 이것이 성숙한 사랑이겠지. 이것이 성숙한 사랑이겠지. 나는 못할 것 같다. 나는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라서. 마지막까지 프레드는 알리스를 걱정하고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안녕을 고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_ 조병화,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우리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우리는 사랑하고 아파한다. 그것을 직시하고 사랑하기에는 너무도 두려우니까. 책의 주된 내용은 이런 것이 아닌데, 그녀가 아닌데 나는 자꾸만 프레드 그녀에게 초점이 가고 마음이 간다. 회색 마세라티를 타고 전속력으로 사라진 그녀.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처럼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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