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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용기다―새라 워터스의 『게스트』

 

박복숭아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퀴어소설가는 누구일까? 나는 아마 새라 워터스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녀의 소설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어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인 『핑거스미스』는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테니까 말이다. 이번에 다룰 장편소설 『게스트』는 그 새라 워터스가 2014년에 발표한 신작이다. 국내에는 2016년에 번역되어 들어왔다.

 

   『게스트』는 '바버 부인'이라 불리던 '릴리언 바버'가 남편인 '레너드 바버'와 함께 '프랜시스 레이'와 그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 입주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으며, 새라 워터스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 퀴어 서사에 정말로 충실하며 역사적 고증 또한 빈틈이 없다. 특히 작중 시간적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2년인데, 이때는 여성 참정권 운동인 서프러제트가 활성화되고 있을 때다. '프랜시스' 역시 이와 관련된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으며, '국회의원에게 신발을 던진 죄로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다(p.135)'는 언급이 나온다.

 한편'프랜시스'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이웃인 '플레이팩스' 부인 등으로 대표되는 구세대와의 사고방식이 충돌하는 모습도 작품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프랜시스'와 '릴리안'이 가장 큰 갈등을 겪게 되는 이유도 이 사고방식의 충돌 때문이다. 연인이 된 두 사람은 남편 몰래, 또 어머니 몰래 밀회를 나누게 되는데, '프랜시스'는 '릴리안'에게 '레너드'와 이혼할 것을 권유하지만 그녀는 망설인다. '레너드'를 사랑하기 때문에 망설이는 게 아니다. '릴리안'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구세대의 사고방식 때문에 이혼을 섣불리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릴리안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만하라니까, 프랜시스! 나도 너를 너무나 사랑해. 하지만 우린 서로 다르단 말야. 너도 잘 알잖아. 너야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개의치 않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널 사랑하는 것이기도 해. 처음부터 너의 그런 점을 좋아헀으니까. 네가 그 빌어먹을 걸레를 머리에 얹고 마루를 닦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쭉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너처럼 그럴 수 없어. 너랑은 입장이 다르다고. 나는 모든 걸 포기해야 할 거야. 너 말고 다른 여자는 사랑할 수도 없을 거야. 하지만 너는... 너는 나한테 싫증이 나겠지. 네타 언니 파티 날 이후 지금까지도, 나는 네가 하루가 다르게 싫증을 낼 줄 알았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잖아. 그럴 수도 없었어."

"그래도 언젠가는 싫증이 날 거야. 아마도. 렌도 나한테 질렸지만, 그건 상관없어. 남편과 아내 사이는 그냥 원래 그런 거니까. 하지만 만약 네가 나한테 질려서 떠나버린다면, 내가 렌하고 이미 헤어진 상황에서 너를 잃게 된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해?"1)

 

 '릴리안'의 말에는 '프랜시스'가 자길 떠나면 어떻게 하냐는 애절한 마음도 들어 있지만, 여성이 혼자 세상을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는 애정이 질릴 수밖에 없다는 자포자기도 들어 있다. 이후 둘의 사고방식 충돌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그만 '릴리안'이 '레너드'의 아이를 임신해버린 것이다. '릴리안'은 자신은 '레너드'의 아이를 원치 않으니 낙태하겠다고 말하지만, '프랜시스'는 명백히 임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건 너무 추저분한 일이야(p.387)"라고 말한다. 그러나 '릴리안'의 선택은 완고하다.2)  왜냐하면 '릴리안'에게 이것은 용기였기 때문이다. '프랜시스'와 함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용기. 하지만 '프랜시스'는 '임신이 되려면 여자 쪽에서 즐겨야 하지 않던가?(p.390)'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상하게 뒤틀려버린 감정을 느낀다. 이런 모습은 Part 2가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낯선 남성에게 "여성 참정권 운동가죠?(p.134)"라는 질문을 받았을 정도로 독립적인 모습을 고수하던 '프랜시스'는 낙태 행위를 '나쁜 짓(p.393)'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꺼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오히려 '릴리안'은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어. 네가 돕든 안 돕든 나는 할 거야(p.393)" 하고 주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결국 낙태에 성공한 뒤 '프랜시스'는 '릴리안'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프랜시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너는 네가 용감하지 않다고 했었지."

릴리안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예전에 너는 용감하지 않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오늘 너의 모습을 봐, 얼마나 용감했는지."

릴리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가로저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축 늘어졌고,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런데도 프랜시스는 릴리안을 바라보며 평생 누군가를 이토록 마음 깊이, 이토록 순전히 사랑하기는 처음이라고 생각했다.3)

 

 '릴리안'의 용기는 그 이후에도 계속 발현된다. 이 직후 바로 '레너드'가 들어오고, '릴리안'이 유산한 것을 본 '레너드'는 왜 이런 짓을 했냐며 '릴리안'을 몰아붙인다. '릴리안'은 그런 '레너드'에게 "별거하자고! 그럼 내가 이 짓을 왜 했겠어?(p.417)"라는 말을 마침내 꺼내지만, '레너드'는 오히려 남자가 생긴 거라고 폭력을 행사한다. '프랜시스'는 '레너드'를 말리면서 '릴리안'에게 받은 용기를 발현시킨다. "내가 그 남자야, 레너드!(p.421)"라고 고함친 것이다. 그러나 분노에 차오른 '레너드'가 이번에는 '프랜시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를 말리려던 '릴리안'이 '레너드'의 머리에 스탠드 재떨이를 휘둘러 그를 죽이면서 새로운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생성된다. 둘은 패닉에 빠지지만, '릴리안'은 또 다시 이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용기를 낸다. 시체를 바깥에다 내놓아서 자연스럽게 죽은 것처럼 만들자는 말을 꺼내는 것이다. '프랜시스'는 그 말에 펄쩍 뛰지만, 결국 '릴리안'의 말에 따르게 된다. '레너드'의 시체를 옮겨서 집 밖 길바닥에 내놓은 것이다. 도중에 '릴리안'이 공황상태에 빠지지만 이번에는 '프랜시스'가 또 다시 용기를 내어 '릴리안'을 다그치고 다독인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릴리안'의 용기가 '프랜시스'에게로, 또 다시 '프랜시스'의 용기가 '릴리안'에게로 순환하는 것이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의지하면서 고난을 헤쳐 나간다. '레너드'의 살인사건이 법정으로 넘어갈 때도 '프랜시스'가 먼저 초연한 모습을 보이며 자수를 이야기하는 '릴리안'을 달랜다. 하지만 '레너드'가 생전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무고한 용의자가 체포당했을 때 '프랜시스'가 자수를 주장하자 '릴리안'은 현실을 이야기한다. 아무도 실수로 '레너드'를 죽였다고 믿어주지 않을 것이며, 우리 둘이 함께 교수형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프랜시스'는 자수를 했을 때 벌어질 사건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자각하고 냉정해진 '릴리안'을 보며 믿을 수 없어 하며, 사랑이 식어감을 느낀다.

 

그러다가 릴리안의 표정이 변하면서 얼굴이 반듯하게 펴졌다. 릴리안은 잠자코 일어나 침대 옆으로 걸어 나오더니, 천천히, 퉁명스럽게 외출 준비를 했다. 소매 안에서 젖은 손수건을 빼내 깨끗한 손수건으로 바꿨다. 서랍 안의 깡통에서 잔돈을 얼마나 꺼낼지 망설이다가 지폐 뭉치에 동전을 감싸서 모조리 핸드백에 넣었다. 화장대 거울 앞에 서서 얼굴과 부어오른 눈꺼풀에 파우더를 칠하고, 뺨과 입술에 루주를 찍어 바르고, 빗으로 정성껏 머리를 빗었다.

프랜시스는 그걸 쭉 지켜보면서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릴리안이 미적거리거나, 더듬거리거나, 울음을 터뜨릴 줄 알았는데,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한결같이 주의 깊은 태도로 방 한쪽의 벽감에 쳐진 커튼을 젖히더니, 가로대에 걸린 옷들 중에서 자기 코트를 빼내고는 거울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코트를 걸쳐 입고서 칼라를 매만져 편 다음, 앞자락에 길게 줄지어 달려 있는 많은 단추들을 하나씩, 침착하게 잠그기 시작했다.4)

 

 그러나 모든 상황이 낙관적으로 흘러가진 않는다. 결국 지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지 못하고 거리감이 생겨, 결국 다투게 된다.

 

릴리안이 싸늘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네 생각만큼 용감하지 못하다는 점은 유감이야, 프랜시스."

프랜시스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벌주고, 그 남자애를 위해 그러는 거라는 식으로 말하진 마. 내가 벌을 받고 싶으면 켐프 경위에게 찾아가서 마땅한 벌을 받을 테니."

릴리안은 눈을 가리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결국 내가 모진 말을 내뱉게 만드네. 내가 여기 온 건, 내가 여기 왔던 건 오로지..." 그녀는 선을 떨어트리고 말을 이었다. "나는 너를 위해 많은 걸 버렸어, 프랜시스. 너를 위해서 내 아기까지 버렸어. 우리가 겪은 일들, 나는 요구했던 적 없어. 만약 내가 그런 식으로 뭘 요구하고 얻어내려 했다면, 이보다 쉬운 길을 택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그러기는커녕... 아니, 이거 놔. 나한테서 떨어져." 프랜시스가 침대에서 뛰어 내려가 손을 뻗자 릴리안은 그녀를 떠밀었다. "나 건드리지 마."5)

 

 이후 둘의 만남은 오로지 용의자인 '스펜서 워드'를 심판하는 재판장에서 이루어지며, 그마저도 쌀쌀맞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배심원단에 의해 '스펜서 워드'가 무죄를 선고받고 '릴리안'과 '프랜시스'가 걱정했던 사태, 즉 '스펜서 워드'가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선고를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음으로서 둘의 관계는 새롭게 시작된다. '프랜시스'를 찾아온 '릴리안'은 이렇게 말한다.

 

(...) "하지만 그는 죽었어. 앞으로도 영영 죽어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영영 그를 죽인 사람일 거야. 그간 월워스에서 지내는 동안 몇 번이고 돌이키고 또 돌이켜봤어. 내가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었을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했어야 지금의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다르게 할 수 있었던 행동은 딱 하나뿐인 것 같아. 그날 밤 파티 이후, 네게 키스했던 일 말이야... 하지만 지금 와서도, 그 온갖 일을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아. 한동안은 너 때문에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후회할 수 없었어. 후회 못 하겠어, 도저히."6)

 

 '릴리안'은 또 용감한 고백을 한 것이다. 그녀는 '레너드'를 살해한 것을 인정하고, 그 죄를 평생 지고 가겠다는 선언을 했으며 한편으로는 자신이 '프랜시스'와 사랑을 나누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의미의 사랑 고백을 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릴리안'은 '그녀의 두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갰(p.736)'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그들이 감히 행복해져도 괜찮을까? 그러면 다친 사람들 모두를 모욕하는 짓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최선을 다해, 거의 의무를 다하듯이, 작고도 용감한 실천을 기어코 해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p.736)' 하고 말이다. 둘은 아마 이렇게 계속,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에게 자신의 용기를 나눠주며 살아갈 것이다. 삶이란 건 항시 용기가 필요한 법이고, 그녀들은 서로의 용기이기에.

 

 *저의 2017년 무지개책갈피의 리뷰단 활동은 『게스트』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제 리뷰를 봐주신 독자 여러분들과, 미숙한 리뷰를 연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신 무지개책갈피 쪽에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언젠가 다른 형태로 또 만날 그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니까요.*

 

 

 

 

 

1) 새라 워터스, 『게스트』, 자음과모음, 2016, p.356.

2) 물론 '릴리안'도 낙태 수술에 대해서는 "그건 위험하지. 잔인하고, 죄악인 데다, 법을 거스르는 짓이야. 난 그런 짓은 절대 안 할 거야(p.389)"라고 말한다. 당시 시대 배경을 고려하면 아주 이상하진 않다.

3) 새라 워터스, 『게스트』, 자음과모음, 2016, p.411.

4) 위의 책, p.617.

5) 위의 책, p.676.

6) 위의 책, p.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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