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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블루>

베키 앨버탤리, 돌베개, 2017(2015)

 

 

  색출[1] 소식을 들었다. 낯익은 비극이다. 나는 우리가 증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느낀다. 동시에 인간은 좀처럼 배우지 못하는 동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나치와 동시대를 살아간 유럽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도 증오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고 느꼈을까. 언뜻 나의 이야기인 듯 사실은 나의 이야기가 아닌 증오를 겪거나 보거나 전해 들으면서, 절망과 환멸과 안도와 망각과 기만 속에서 그럭저럭 살았을까. 지금의 나처럼 주로 멍해 하면서 생존에 집중했을까. 나보다는 덜 비겁했을까. 아우슈비츠로부터 약 70년, 그동안의 반성에도 불구하고 이 상태다. (2017년에! 색출이라니!)

 

  어두운 말로 시작했지만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베키 앨버탤리의 <첫사랑은 블루>는 딱 봄처럼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내가 농담 삼아 ‘연애 권장 도서’라고 불렀을 만큼 두 게이 주인공의 연애 이야기가 간지럽도록 좋다. 혐오 범죄, 아웃팅, 커밍아웃 같은 소재를 명랑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내는 것도, ‘나 혹시 게이인가?’가 아니라 ‘나 게이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도 좋다.[2] 이 책을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유표라는 키워드로 읽었다. 유표란 사회적 비주류 집단에 추가적인 기표가 붙여지는 언어학적 현상이다. 이를테면 의사, 교사, 작가 등의 기본 값(남성)에 여-의사, 여-교사, 여류-작가(여성)라는 추가 기표를 붙이는 것이다. 퀴어-문학도 유표화된 범주다.

 

  아시아인 시스젠더 유성애자 바이섹슈얼 성인 여성으로서 나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다른 정도의 유표화를 경험한다. 분명 바이섹슈얼 정체성은 아시아인 정체성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뤄진다. 많은 경우 성소수자 정체성은 말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레 삭제된다. 먼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시스-유성애-이성애자로 치부된다. 기본적으로, 성소수자들은 숨어 있다. 이 ‘보이지 않음’ 때문에 위계가 만들어진다. 색출(索出) 과정은 이 위계를 증명한다. 찾는 자는 숨은 자를 찾아내서 끄집어낸다.

 

  소설은 같은 학교의 마틴이 주인공 사이먼과 블루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봤다고 말하면서 시작된다. 첫 페이지부터 아웃팅 협박이다. 결국 사이먼은 학교의 괴롭힘과 혐오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마틴은 울면서 악의가 없었다고 말한다. 정말 그랬을 수 있다. 그저 시스 이성애자 남성인 그는 숨겨짐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웃팅 문제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권력이자, “살아 있는 자의 권리의 증명이며, 잔혹함의 표시”(미시마 유키오)이다. 이처럼 청소년들에게 특히 위험할 수 있는 아웃팅과 혐오 범죄를 다룸에도, 이 소설은 게이 정체성을 약자로서만 수동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 다만 사이먼의 말처럼, 퀴어 정체성은 “움츠러들게 되는, 동시에 너무도 드러나 있는 것 같다는 느낌.”(27쪽)을 들게 하는 양면적 억울함에 가깝다.

 

  소설이 아웃팅과 동시에 고민하고 있는 커밍아웃은, 그러면 어떤 의미일까? 일종의 전략적 유표화가 아닐까. ‘나는 너와 다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주류가 아니다’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

 

“여담이지만, 모든 사람이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는 생각 안 들어? 왜 이성애를 기본으로 여겨야 하지? 누구나 자신이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고 선언을 해야만 해.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거창하고 어색한 순간을 겪어 봐야 해.” (166쪽)

 

그렇다. 커밍아웃을 애초에 왜 해야 하는 걸까? 나는 퀴어 독자로서 사이먼의 억울함에 깊이 공감한다. 커밍아웃은 다분히 귀찮고도 현실적으로 위험한 과정이다. 문제는 집단 간의 위계다. 특정 집단에게만 부담이 가해진다. 나는 사이먼이 제시한 모두가 모든 정체성을 밝히는 씬scene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언을 해야만 해”는 지나치게 호기로워서 독단적으로까지 느껴진다.) 다만 커밍아웃이 보다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고, 그렇게 각각의 커밍아웃에 가해지는 부담이 줄어들다 보면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평등함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말. 소설에서 사이먼이 색출되는 과정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사이먼이 첫사랑 상대 블루의 정체를 탐색해가는 과정이다. 두 사람은 이메일로만 연락하기 때문에 본명도 얼굴도 모른다.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사실만 알 뿐이다. 실제 현실에서 사이먼이 이런 저런 사람들을 블루로 추측하고 탐색해가는 것이 일종의 추리 소설 같은 재미를 준다. 위계에 기반한 색출과 달리 탐색은 같은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관계맺음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네가 두렵지 않다는 것(거트루드 스타인)이라는데, 퀴어 정체성의 숨겨짐을 공격하려는 세상 속에서, 사이먼과 블루는 각자의 벽을 넘어 서로에게 가 닿으려 분투한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열심히. 탐색을 하자.

 

 

 

보배

탐색 중에 길을 잃은, 퀴어문학 마니아

 

 


 

[1] 이것이 지칭하는 최소한의 범주는 이번 달 보도된 대한민국 육군과 러시아 체첸에서의 게이 혐오 범죄다.

[2] 많은 퀴어 소설이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고통, 혹은 커밍아웃에 이르기까지의 갈등과 주변 사람들의 포용이나 배척 등에 천착하는 데 반해, 『첫사랑은 블루』는 사랑 그 자체에 한층 더 관심을 둔다. 물론 사이먼과 블루도 혼란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지만, 적어도 이 두 소년에게는 퀴어 정체성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가 최대 과제가 아니다. 그들은 퀴어로서 자기만의 사랑과 행복을 찾는 데에 더 큰 관심을 쏟는다. (출판사서평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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