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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에만 아주아주 집중한 리뷰입니다. 

 

 

 

 

 

가끔 생각하곤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퀴어’를. 2015년을 살아가는 퀴어로서 부모님 세대 혹은 그 이전의 퀴어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퀴어에 대한 인식이나 자료가 한참 부족할 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매체에서 재연되는 양상 역시 고정적이기 때문이다. 한국뿐 만 아니라 외국의 퀴어문학에서도 퀴어는 대체로 우울하고 비극적인 것을 주된 모티프로 하여 재연된다. 퀴어 주인공들은 대개 퀴어에 대해 무지한 사회에서 홀로 비밀을 끌어안고 살다가 우울 속에서 죽어간다. 그러나 2015년을 살고 있는 청년 퀴어인 내가 퀴어를 떠올릴 때 상상 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동성결혼 합법화’, ‘퀴어퍼레이드’ 등이다. 게다가 퀴어를 다룬 수많은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영화 등등! 2015년의 우리는 훨씬 더 많은 퀴어스토리에 노출되며 살아간다. 역사라는 것이 기록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라면, 드디어 퀴어는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선사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퀴어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살아왔다. 연극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5년을 넘나드는 퀴어의 역사를 보여준다. 1958년의 필립과 올리버는 만남부터 기묘한 감각을 느끼지만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름 붙임을 어려워한다. 용기를 내어 필립에게 사랑에 빠진 그 순간에 대해 고백하는 올리버에게 필립은 대답한다. "나는 '그들'과 달라요. '그들'처럼 공원에서 아무나 만나서 섹스나 하는 그런 삶은 제 삶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퀴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다. 그저 '섹스'만으로 특징지어지는 '그들'일 뿐이다. 이런 필립을 향해 올리버는 말한다. "당신만이 제 진짜 이름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이름은 끝끝내 불려지지 않는다. 결국 필립은 그 시대의 동성애 치료법이라고 불려지는 '혐오요법'을 통해 올리버를 극복해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58년의 올리버는 이렇게 말한다. “진실하게 살지 않을 거면, 이 멍청하고 고통스러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내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내 스스로를 똑바로 쳐다보지조차 못할 거라면 말이죠”. “그 침묵이 결국 당신 자신을 죽일거야. 진짜 자신을” 사람들은 진실하기 위해서, 그리고 침묵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 고통스럽지만 많은 노력을 해왔다. 커밍아웃을 하고, 팻말을 들고. 때로는 정말 부당한 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그리하여 우리는 이 시대까지 왔다. 적어도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는 퍼레이드가 열리고, 무수히 많은 퀴어의 이야기가 쏟아져오는 2015년 말이다. 물론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여전히 퍼레이드 때면 등장하는 수많은 반대 세력과, 공영방송의 검열 등. 그러나 퀴어의 역사는 서술되기 시작했고, 기대컨대 더 평등하고 인권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로 쓰여져 나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가끔 이런 소리를 듣는다. “자 그래서 이쯤 하면 된 거 아니야? 뭘 더 하려고 퍼레이드 같은걸 하고 그래?”

 


2015년의 올리버는 그의 친구 실비아에게 '솔직히 2015년 런던에서 퀴어는 한물간 소재'라며 굳이 퍼레이드를 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2015년의 필립과 올리버는 1958년의 필립과 올리버와 달리 그들은 그들의 정체성 자체로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올리버의 바람기라는 아주 개인적인 문제이다. 올리버는 ‘원나잇’을 즐기는 자신을 변호하면서 2015년의 런던 사는 게이가 금욕적인 척한다며 필립에게 말하고, 필립은 네가 그렇게 방탕하게 사는 동안 다른 나라에서는 내전이 일어나고 있다며 올리버를 비난한다. 이 것은 아주 개인적인 커플의 문제이다. 하지만 올리버를 고용한 신문사 사장의 입을 통해, 이것은 단번에 퀴어의 문제로 환치된다. “원래 게이들은 다들 그렇잖아요. 아무하고나 자고. 공원 같은 데서 만나서 섹스하고” 

 


재미있는 것은, 1958년에도 2015년에도 퀴어에게는 ‘섹스’라는 키워드가 따라다닌다는 점이다. 마치 내가 누구와 성적인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주제에, 그렇게 한가지 측면만 가지고 결정된 정체성은 이제 오히려 개인을 전적으로 설명하려고 든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일반적인 퀴어론에 빠지게 된다. 예컨대 다음 같은 것들이다. 퀴어는 센스있잖아. 개네는 좀 성적으로 문란하잖아. 퀴어는 좀 감각적이잖아. 등등. 그리하여 한 개인은 타인의 앞에서 ‘퀴어’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2015년의 런던 사는 게이’로서 존재하는 올리버는 필립이 떠난 후에도 (일종의 복수심을 가지고) ‘핫한 게이’로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지만, 결국은 필립이 자신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부분이었음을 깨닫고 친구인 실비아와 함께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가한다. 그리고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필립과 올리버는 실비아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 화해한다. 올리버는 필립에게 ‘게이’가 원나잇하는 게 어때서 라고 말하는 대신에, ‘내’가 너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미안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퀴어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올리버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퀴어이기 이전에 ‘나’로서 정의하는 것이다. 

 


퀴어의 가시화는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앞으로 더 많이 가시화 되어야 하고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것은 언어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의미의 소실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퀴어 스스로를 긍정하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 ‘퀴어’의 경우에도 그렇다. 퀴어는 무엇인가? 퀴어는 누구인가? 퀴어라는 정체성이 개인을 온전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  

 

 

퀴어의 역사는 계속 된다. 이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사실 퀴어는 우리가 이름을 붙이든 아니든 계속 거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퀴어의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사람을 외로움 속에 고립시키는 침묵에서, 어떤 ‘목소리’로 이행하는 길이고, 목소리는 또 다른 목소리의 대답을 불러 일으킨다. 목소리는 대화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퀴어’ 만으로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는 신화적 믿음은 우리를 또 다른 침묵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이런지점에서 연극 <프라이드>는 퀴어의 역사에서 관계의 역사로 돌아온다. 필립은 올리버의 사과에 대해 이렇게 답변한다. 

 

 

“나도 왜 내가 자꾸 너한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너와 나, 우리 둘 사이의 이야기. 우린 이야기가 있어. 우린, 역사를 가졌단거야”

 

 

이 답변에 이르러, 퀴어의 역사와 관계의 역사는 서로 교차한다. 1958년의 필립과 올리버, 그리고2015년의 필립과 올리버의 역사가, 그리고 ‘필립’과 ‘올리버’의 역사가 교차하는 것이다. 완전히 분리되지도, 그러나 서로를 완전히 포섭하지도 못하는 두 개념은 하나의 개인 속에서 교차하며 개인을 완성시킨다.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청자로서, 요 근래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연되는 퀴어를 볼 때 기쁘면서도 고통스러운 지점들이 있다. 뻔한 퀴어의 등장도 고통스럽지만, 등장인물이 ‘퀴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이야기는 급작스레 퀴어 일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는 점도 고통스럽다. 사실은 등장인물 A의 이야기인데도,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영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까닭이다. 매체나 이야기에 있어서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다.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퀴어가 재연되기 시작한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시대로 따지자면 갓 신석기 시대쯤 되었을까? 역사는 분명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짊어지고 중세와 근대, 현대를 지나 미래로 갈 것이다. 어디쯤에서 퀴어의 역사와 관계의 역사가 절충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더 많은 이야기, 더 많은 쓰여진 역사와, 더 많은 소설들이 물줄기처럼 흘러나와서 다양한 색채로 함께하게 된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다양한 정체성과 내력들에 대해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타인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길 바라는 노력과 의지, 거기서 오는 용기, 용기 있는 목소리만이 갖는 프라이드.” 말이다.        

 

 

 

 

 

 

덧붙임) 사실 퀴어인 청자가 보기에 그다지 색다른 연극은 아니었다고 혼자만 (...) 생각해본다. 극이 워낙 길어서 일지도. 그러나 긴 스토리를 끌고 가는 배우들의 연기는 감히 평가하건대 정말 좋았다. 스토리보다는 대사에 집중하게 될 정도로 좋은 대사가 많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여기 몇몇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존엄성이요. 타인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길 바라는 노력과 의지, 거기서 오는 용기, 용기있는 목소리만이 갖는 프라이드.” 

 

“그 침묵이 결국 당신 자신을 죽일거야. 진짜 자신을”

 

“진실하게 살지 않을 거면, 이 멍청하고 고통스러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내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내 스스로를 똑바로 쳐다보지조차 못할 거라면 말이죠”

 

“기나긴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 대해, 자신에 대해 어렵고 불안했던 순간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지금의 잠 못 이루는 밤들도 가치가 있었다,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50, 아니 500년 후에도 이 시절을 사는 사람들은 그 시간들로 인해 더 현명해지고, 더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모든 것이 다 괜찮아 질거야. 마치 먼 미래에 이미 모든 것을 거친 내가 나를 다시 위로하듯 다정한 속삼임. 위안처럼.”

 

“그러나 확실한 건, 너와 나, 우리 둘 사이의 이야기. 우린 이야기가 있어. 우린, 역사를 가졌단거야”

 

“상식의 한계 따윈 박살 내버리는 거지. 천천히 장벽은 무너질거야. 반드시”

 

“내가 멀리서 속삭일게요.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을때까지. 그리고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 까지.”

 

 

 

 

악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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