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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전환」

『현대문학』 2017년 6월호 수록

 

 

  윤이형을 읽으면 일기를 쓰고 싶어진다. 윤동주는 기도문을, 안보윤은 편지를, 김승희는 호소문을 쓰고 싶게 만드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쿰쿰한 곳에 감춰두었던 죗값을 상기시킨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나는 최선을 다했어, 이 정도면 나쁘진 않지 하면서 대충 넘겨보려 했던 순간들을 끄집어낸다. 그래서 변명처럼 숙제처럼 나는 일기를 쓴다.

 

  윤이형의 「전환」을 읽었다. 일차적으로 이 소설은 SF 젠더 패러디물이다. 인류의 성별이 주기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1] 이미 선사시대 때 완성된 진화 방식이란다. 인간의 ‘양성성’이 자연이자 본능인 사회에서 ‘단성주의’ 주장은 비이성적으로 매몰된다.[2] 여성 독자인 나는 이러한 세계관에 아직도 매혹된다. 소설 세계관이 집약적으로 설명된 서두를 읽으며 신나했다. 성차별을 명쾌하게 풍자하는 작품이구나.

 

  그 다음 문장을 여기에 적어두는 것만으로 윤이형을 조금 설명할 수 있겠다고 말하면 억측일까. 바로 이거다. “진희 씨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목덜미다.”(83쪽) 주인공 ‘나’(이경)는 성 전환을 하는 ‘정상인’이며 진희는 남성형 신체로만 살아가는 국가 등록 장애인이다. ‘나’는 진희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이차적으로 이 소설은 로맨스다. 하지만 소설이 주목하는 것은 두 사람의 이어짐이 아니라. 둘 사이에 놓인 간극이다.

 

  결국 명쾌한 젠더 패러디물만도, 달콤쌉쌀 로맨스만도 아니었다. “사람이 변하거나 변하지 않거나, 그런 것들은 별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었다.”(108쪽)라는 말 그대로, 이 소설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진득하게 그려낸다. 우리는 참 다르다. 그런데 사랑한다. 그래서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루카」에서 목사 아버지가 퀴어 아들에게, 퀴어 활동가가 학원 강사 애인에게 그랬듯, 윤이형의 작품은 간극의 절벽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잔혹한 세계’ 때문에 생겨나는 절벽과, 그것을 앞에 두고 느끼는 당혹감과 머뭇거림의 장면들. 말하자면 “완전히 지워진 텍스트에 딸린 주석”(페르난두 페소아) 읽기. 소설에 따르면 ‘NOTHING’과 ‘NOTHING IS GONNA CHANGE MY WORLD’ 사이랄까.

 

  일기니까 설명하기보다 고백하고 싶다. 이경은 진심의 힘을 믿는 순진한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운이 좋았다. 대체로, 미안함이 미안하다는 말로 청산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미안하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다르게 처신했을지 모른다. 이건 변명이다. 말 없는 현장에서는 변명을 주워 담는 과업만 주어졌다. 그러담다 보면 정답이 될 만한 하나의 말을 찾지 않을까 하고 등을 굽히고 있었는데, 허리를 잠깐 펴면 어느새 절벽이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참 뻔한 말이다. 정답을 도무지 모르겠다.

 

  알고는 있다. 일기는 너그러운 고백록이다. 일기를 쓰며 나는 스스로를 용서한다. 쉽다. 다시금 나는 자아도취의 문장을 등에 업고 절벽 뒤로 발을 물린다. 모르는 것은 좀처럼 모른 채로 살아간다. 그렇게, 절벽에 대한 일기를 쓰다보면 일기가 절벽이 된다. 그래서 나는 윤이형처럼, 망연한 간극을 자꾸 바라보는 사람들을 읽는다. 그가 언젠가 말했듯 “무참한 풍경을 정확히 보면서 … 자신이 타인의 자리에 설 수 있는지 없는지를 깊이, 그리고 충분히 오래 생각”하는 사람들. 비겁한 나는 그 응시를 동경한다.

 

  "이 세계가 우리를 위해 변하기를. 아니 변하지 않고 꾸준하게 잔혹하기를, 그래서 우리가 그 잔혹함 속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헤어지지 않기를.

  그를 위해 내가 도저히 발 디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영역까지 한 걸음 내디뎠다는 뿌듯함과, 그런 강렬한 감정은 오직 마음의 수면 밑에만 머무르게 하겠다는 철부지 어린애 같은 소망을 품은 채, 나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었다. 시민의 마음에서 가장 거리가 먼 곳에서.“ (114쪽)

 

 

 

보배

아마추어 절벽러, 퀴어문학 마니아

 

 

 

[1] 대다수의 젠더패러디물이 그렇듯, 이 소설 역시 여자/남자라는 성별이분법적 설정을 따르고 있다.

[2] 이 소설에서 인류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책 <납작한 인류>의 일부분이다. 소설 세계관의 ‘주류’ 시각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 후반부에 인용되는 <유니섹슈얼리티>와 비교하며 읽으면 더 흥미롭다. <유니섹슈얼리티>는 단성주의자들을 대변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시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바로 이런 데서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라는 말을 본문에 넣으면 더 유용한 리뷰일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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