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무지개책갈피



노랑무늬영원(소).jpg

 

 

추억되는 사람 ― 한강, 「파란 돌」

 

 

 1.

 

 누군가를 좋아하면 어느 순간 상대가 나와 닮았다고 믿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오독을 한다. 관계가 끊어지고 나서, 혹은 관계를 끊기로 결정하고 나서, 깨닫는다. 상대가 나와 얼마나 다른 사람이었는지. 그런데 그 깨달음이란, 정말로 깨달음일까? 어쩌면 내 주제에,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서 오히려 만들어낸 거짓말은 아닐까? 혹은 헤어짐의 이유를 그저 나 좋을 대로 이해하고 싶어서는 아닐까?

 

 

 2.

 

 한강의 소설집 『노랑무늬 영원』에 수록된 단편 「파란 돌」은 '나'가 '당신'의 안부를 물으며 시작한다. 몇몇 삽화를 제외하곤 '당신'에게 편지를 쓰듯 이어지는 글에서 우리는 '당신'이 '나'의 친구의 외삼촌이었으며, 여자가 되고 싶어 했으며, 어려서부터 많이 아팠으며, '나'의 첫사랑이었으며,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은 '나'의 '당신'에 대한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나'가 '당신'을 특별히 회상하는 것은 아니다. 자살 시도한 날 오전부터 거쳐온 많은 사람들, 옛 은사, 옛 친구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른 것이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미래를 생각하면 갑갑한 때가 있다. 어째서, 어쩌다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때가, 어떤 이에게는 무척 짧고 다른 이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 것이다. 그렇게 뒤돌아보는 시간에 유독 평평한 바닥에 튀어나온 작은 돌부리처럼 걸리는 사람이 하나둘 있을 것이다. 「파란 돌」의 '나'에게 그 사람은 '당신'이었다. '나'의 늙어갈 모습이 궁금하다고 말했던 사람.

 

 그는 특별히 아름답게 추억된다.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의 그는 어쩌면 '나'의 회상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살아있는 사람,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은 소설의 서술처럼 이토록 차분한 아름다움보다는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못난 모습에 가깝기 마련이다. 조금은 함부로 대해도 되고. 그러니 '나' 또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좋아서 일부러 못 들은 척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관계였든, 당사자의 선택이 아닌 다른 계기로 단절되는 경우가 있다. 흔하게는 이사, 졸업, 전학, 이직, 유학…… 그리고 죽음. 특히 예기치 않은 죽음이라면 상대방을 낭만화하기에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어떤 죽음이든 예기치 않은 죽음일 테지만, 특히 젊은 나이에 죽은 이는 대개 시간이 자신을 더럽힐 기회를 주지 않아 더더욱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3.

 

 '당신'은 없는 시간에서 '나'는 묻는다. '살아 있다는 게 느껴지나요. 나도 여기서 느끼고 있어요.'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에게 무엇을 묻고 답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일인가. 결국 답하는 것은 '나'가 상상하는 '당신'이지, 실제의 '당신'이 아니다. 추모가 오래 이어질 땐 죽은 사람을 제물 삼아 추모하는 사람 좋을 대로의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혜

fkvl0327@gmail.com

이제 슬슬 건강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요.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공지] 리뷰어님들께 : 리뷰 업로드시 유의사항 무지개책갈피 2017.01.14
공지 [공지] 리뷰의 무단공유, 수정 및 도용을 금지합니다. file 무지개책갈피 2016.04.02
공지 [공지] 정기리뷰어 스케줄 secret 무지개책갈피 2015.08.14
152 신간 리뷰 : 가끔은 달콤함에 빠져버려도 좋은 것 ─ 연홍, 『바게트와 마카롱』 file 지혜 2018.01.27
151 신간 리뷰 : 웰메이드 SF 리얼리즘 - 이종산 〈커스터머〉 file 다홍 2017.11.18
150 신간 리뷰 : 퀴어한 소설로 비누 목욕을 – 가쇼이 〈가발〉 file 보배 2017.11.03
149 신간 리뷰 : 불편러가 쏘아올린 작은 말 – 김혜진 〈딸에 대하여〉 1 file 보배 2017.10.06
148 신작 리뷰 : 별 것 아닌 동성애 -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file 다홍 2017.09.17
147 신작 리뷰 : 소비와 의심의 공동체 – 박민정 「아내들의 학교」 file 보배 2017.09.02
146 신간 리뷰 : 사랑의 재구성 - 퀴어 시선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다홍 2017.08.20
145 신간리뷰 : 사랑이라는 사인(死因) -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file 보배 2017.08.05
144 신작리뷰 : 일기의 절벽 - 윤이형 「전환」 file 보배 2017.06.27
143 성숙한 사랑. _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똑똑한 마카롱씨 김늑대 2017.06.24
» 추억되는 사람 ― 한강, 「파란 돌」 file 지혜 2017.06.21
141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새라 워터스의 『게스트』 file 박복숭아 2017.06.11
140 지넷 윈터슨,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 file 앨리 2017.06.07
139 _안느 브레스트, 완벽한 여자를 찾아서 김늑대 2017.05.20
138 나를 구원해주지 않아도 좋아 ― 전혜진, 「I love you」 file 지혜 2017.05.18
137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말을 아끼고 싶은 소설 1 file 너머 2017.05.17
136 미리암 프레슬러,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file 앨리 2017.05.12
135 '퀴어'는, '퀴어문학'은 지금 여기에 있다―HEN의 『소프트 보일드 키튼 1』 file 박복숭아 2017.05.03
134 신간 리뷰 : 색출 또는 탐색 - 베키 앨버탤리 <첫사랑은 블루> file 보배 2017.04.25
133 이 이야기는 너를 만나 시작되었다. _노유다, 코끼리 가면 김늑대 2017.04.2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Copyright ⓒ 2015 무지개책갈피 All right reserved

메일주소: rainbowbookmark@hotmail.com / 트위터: @rainbowbookm
후원계좌: 국민은행 823701-04-291039 이보배(무지개책갈피)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