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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가면

노유다 글, 그림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조개 우물과 비슷한 것이다. 흔적 없이 사라진 이야기. 시간 속에 분명 있지만 없는 것처럼 된 이야기. 누군가는 이미 기억에서 지웠고 또 누군가는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 이야기. 내가 말을 꺼내지만, 실은 많은 우리들의 이야기. 코끼리 가면 이야기는 너를 만나 시작되었다. 너는 이야기를 들어 준 첫 사람이다.  _ 본문 中

 

 

 

코끼리 가면은 목소리 소설로 소설과 다큐멘터리 그 중간 사이에  위치한 작품이다. 이야기들은 작가인 노유다 자신의 이야기이다.  작가 노유다는 실제 친족, 아동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 이 책은 그때의 아픈 기억을 일부 더듬어 간다. (참고 ; 코끼리 가면 텀블벅 페이지 : https://tumblbug.com/oomzicc) 작가가 여성 퀴어이고 그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기에 퀴어 문학에도 소개되었으나, 이야기에서 퀴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을 차지하지 않았다. 나는 어떠한 사람이야. 나를 이루는 여러 가지 부분 중 한 가지가 퀴어지. 라는 느낌이었다. 

 

 

 

이야기는 나와 너가 합정에 있는 한 만두집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당시 나는 나의 애인과 함께 있었고 너는 누군지 모를 너의 일행과 함께 있었다. 먼저 알아본 사람은 나의 애인이었고 먼저 나와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은 너였다. 그날의 만남은 짧은 인사로 끝났다. 하지만 몇 개월 뒤, 나와 너는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너와 함께 있으며 나는 이유 없는 편안함과 호감을 느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먹었던, 네가 덜어 준 만두의 온기. 며칠 뒤 나는 그 온기를 찾게 된다. 

 

며칠 뒤 나는 너의 온기를 그리워 하며 맨발로 합정 근처를 배회하게 된다. 지갑도 없었고 신발도 없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이는와중에 나는 네가 덜어준 만두 만큼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나는 그러다 강 근처에 도착하게 된다. 왠지 네가 거기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강물 속으로 손을 뻗는다. 강물에 한 마리 코끼리의 얼굴이 비췄고 나는 그것을 보며 강이 꼭 깊은 우물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물 속에서 한 여자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들어 줘."

"뭐?"

나는 놀라 물었다.

"넌 내 얘길 안 듣잖아."

 

_ 본문 中 

 

 

어린 여자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한다.  나를 코끼리라고 생각하고선. 그 어린 여자아이의 이름은 혜경이였고 후에 나는 알게 된다. 그 아이가 과거의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이 책은 지독히도 마음 아프고 또 잔인했던 기억을 고스란히 기록하였다. 허나 작가는 삶을 긍정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매듭지었다. 다음은 본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우리는 함께 서울행 기차를 탈 것이다. 다음여정에서는 나도 세렝게티 할머니 코끼리처럼 현명해질 것이다. 기억의 무게만큼 아는 것이 많으며, 함정이 있는 길은 굳이 걷지 않고, 포악한 맹수가 와도 소리를 내어 쫓아내거나 여차하면 머리로 치받을 수 있다. 경계를 벗어나 독립한다.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 더 안녕히 살아갈 것이다. _본문 中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 더 안녕히 살아갈 것이다. 책은 이 구절로 끝을 맺었다. 그 말을 보는 순간 필자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낼 수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벚꽃이 만발해 있던 때였고 지금은 벚꽃이 모두 다 떨어지고 푸른 싹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의 상처에도 다시금 잎이 필 것이다. 느리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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