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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딸에 대하여>

민음사, 2017

 

 

  고민했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더 쉽다.

  ‘소설 <딸에 대하여>는 생의 변두리로 밀려난 여성들의 이야기다. 동성애자 딸을, 죽어가는 노인을,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 애쓰는 어머니의 성장 소설이다. 이해의 바깥에 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그것을 질문한다. 그 온도가 길게 따뜻하다.’

 

  하지만 추석은 힘겹다. 가족이란 단어에서 염증 고통 권태를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겹다. 그래서 거짓말하지 않기로 한다. 추석이니까 솔직해지자. 나는 이 소설을 추천할 마음이 별로 없다. 퀴어 문학의 외양을 하고 있는 이 소설이 사실 퀴어 독자들에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합은 위험한 단어다. 그럼에도 일부러 그 말을 썼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시달렸다. 특정 서사에 부적합 판정을 내릴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다.

 

  소설의 중심엔 세 명의 여성 인물이 있다. 동성 연인과 7년을 함께한 ‘그린,’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어가고 있는 노인 ‘젠.’ 그리고 그린의 어머니이자 젠을 돌보는 복지사 ‘나’가 화자로 등장한다. ‘나’는 성소수자와 노인이라는 타자를 관찰하고 평가하면서 ‘이해’하려 애쓴다. 이것은 퀴어 독자인 나를 불편하게 한다. 먼저 ‘나’와 딸의 동성 커플 사이의 이야기를 보자.

 

  그린과 그린의 파트너 레인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급히 ‘나’의 집으로 들어온다. ‘나’는 딸의 동성 연인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심정은 ‘이해’할만하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이 소설의 서두부터 쏟아진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데 쉽게 되지 않는다. 그 고민은 소설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내가 너희를 이해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때로 기적은 끔찍한 모습으로 오기도 하니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오긴 오겠지. (중략) 그러나 그런 기적이 오기도 전에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지 않니. 그건 거짓말이니까. 내 딸을 포기하는 거니까. 떳떳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내 딸의 삶을 내가 놓아 버리는 거니까.” (195쪽)

 

  결말 부분이다. 소설은 너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대신, 이해하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다행스러운 행보일까. 물론 이해는 어렵다. 수용은 더 어렵다. 이런 태도는 주로 받아들이는 자의 권력에서 나온다. 말하자면 그린과 레인은 ‘나’의 ‘집’에 들어온 (일종의) 침입자다. 집이라는 가장 내밀한 공간에 들어온 타자들을 내쫓지 않고 이해하려 애쓰는 ‘나’의 입장은,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일부의 시혜적인 시선을 그대로 담고 있다. 딸의 “떳떳하고 평범”한 삶을 기원한다는 ‘엄마의 마음’은, 퀴어 독자인 나를 비껴간다. 그 말은 내가 아니라, 나를 낯설게 여기는 사람들과 공명한다.

 

  할 말이 많지만 줄이기로 한다. 다음으로 젠의 경우를 보자. 젠은 ‘나’가 요양원에서 돌보는 노인이다. 젊었을 때는 한국계 외국인들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지금은 외로이 죽어가고 있다. 화려한 젊은 시절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현재의 젠은 다리 사이로 배설물을 뚝뚝 흘리며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젠은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화자인 ‘나’는 그런 젠을 연민과 공포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요양원에서까지 쫓겨난 젠을 자신의 집으로 들인다. 이때 ‘나’의 집은 약자와 소수자를 수용하는 ‘품 넓은’ 장소다. 이러한 풍경은 많은 독자들을 감동케 할 것이다. 반면 어떤 독자들은 그 집이 품고 있는 동정의 온기가 불편하다.

 

  필립 로스가 노년기일 때 노년기에 대해 쓴 흥미로운 소설이 있다. <죽어가는 짐승>에 이런 말이 나온다. "늙지 않았을 때 노인에 관해 이해하는 유일한 것은 그 사람들한테 그들의 시간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는 것뿐이야. 그러나 그것만 이해한다면 그 사람들을 그들의 시간 속에 얼어붙게 만들게 되고, 그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야."(50쪽) 이처럼 노인을 시간의 낙인에 가두고 그들을 연민하는 시각 역시,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는 안전한 지위로부터 온다. 당사자가 아니라면(때로 당사자들조차) 여기서 자유롭기란 힘들다. 그렇기에 그 힘든 일을 해보려는 더 많은 소설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고민했다. 이 책을 읽은 내 주변의 퀴어 독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갈렸다. 누군가는 감동하며 울었고 누군가는 불편해했다. 확실히 나쁜 말은 지친다. 솔직하게 쓰고 나면 죄지은 기분이 된다. 그렇게만 배웠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말을 한다는 것은 총을 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혜석은 “우리가 비판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라고도 했다. 이 말들을 변명처럼 늘어놓고, 오늘도 말을 쏘기로 한다.

 

 

 

보배

가족이 타자, 퀴어문학 마니아

 

 

 

 


?
  • 봄동 2017.10.07 11:40
    오늘도 재밌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장전된 다음 글도 몹시 궁금합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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