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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책갈피



매년 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T DAY,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입니다. 성소수자 혐오는 폭력입니다. 성소수자 혐오를 반대하는 세계적인 움직임에 여러분이 함께하시길 촉구하면서, 무지개책갈피에서 성소수자 혐오를 다룬 퀴어문학 작품들 중 다섯 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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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앤 피터스 『너를 비밀로』(이매진, 2015/원작2003)

 

 『너를 비밀로』의 주인공인 19살 홀란드는 예쁘고, 우등생이며, 가장 우수한 학생들만 초대받는다는 주지사 만찬의 초청장을 받을 정도로 촉망받는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녀의 남자친구도 비슷한 부류였죠. 그런데 한 전학생이 등장합니다. '2QT2BSTR8(too cute to be straight, 이성애자로 살기에는 너무 사랑스러워)'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당당히 입고다니는 오픈리(openly) 레즈비언 전학생은 한 눈에 반할 만큼 매력적이었죠. 낯설지만 분명한 종류의 사랑에 빠지면서 홀란드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가혹하지만 현실적인 전개가 이어집니다.

 

 소위 '주류'로 분류되었던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믿어왔던 친구들에게 아웃팅을 당하고, 불특정 다수의 혐오범죄에 노출됩니다. 또한 다름아닌 원가족으로부터 심각한 폭행을 당하고 버려지게 됩니다. 아이다호 데이 기념으로 『너를 비밀로』를 추천해드리는 이유는,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혐오범죄를 잘 그려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홀란드가 촉망받는 여학생일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의 역할이 컸습니다. 늘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하고 학습 및 취미 스케쥴까지 관리해주는 어머니 덕에 홀란드는 성실한 삶을 (어쩌면 반강제로) 유지할 수 있었죠. 그러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베풀어오던 그녀의 어머니는 아웃팅 이후 가장 무섭게 돌변합니다. 최초로 돌아서는 사람이자 심각한 혐오범죄의 가해자가 되죠. 온 몸에 멍이 들 만큼 폭행을 가하고 폭언을 쏟아붓는 것도 모자라 홀란드를 무일푼으로 집에서 쫓아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주인공을 구성해왔던 따뜻한 세계, 그녀의 '집'이라는 개념은 하루아침에 붕괴됩니다. 이 과정이 너무나 생생해 읽는 이의 가슴이 메어오기도 하고, 공포스럽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겪어봤거나 겪을 수 있는 폭력이기 때문이죠. 당장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홀란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너를 비밀로』는 뻔뻔한 해피엔딩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다행히도, 홀란드는 괜찮습니다. 괜찮을 수 없지만 괜찮기 위해 괜찮습니다. 홀란드의 썩 괜찮은 선택은 책을 통해 살펴봐주세요. 그리고 함께 고민해봐요. 원가족의 혐오범죄가 홀란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우리는 어떻게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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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네일러 『브루스터 플레이스의 여자들』(민음사, 2009/원작1982)

 

 이 소설은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이 태동한 직후, 미국 북부의 빈민가 ‘브루스터플레이스’에서 살아가는 흑인 여성들의 삶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정치한 언어로 펼쳐지는 일곱 여성들의 삶을 함께 좇아가면서, 현대 독자들도 당시 흑인 여성들이 겪었을 다양한 경험들을 간접 체험할 수 있지요. 장담컨대, 이것은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가슴에 내리꽂힐 이야기입니다.

 

 특히 브루스터플레이스에 갓 이주한 레즈비언 커플, 테레사와 로레인의 에피소드가 눈길을 끕니다. 1960년대입니다. 스톤월 항쟁(1969년)의 여파가 있기도 전입니다. 당연히 함께 사는 두 여성에 대한 이웃 주민들의 반응은 달갑지 않습니다. 걷잡을 새도 없이 온갖 소문이 퍼져갑니다. 그래도 테레사와 로레인은 꿋꿋하게—소설의 주인공들은 어쩜 이렇게 강한지요—브루스터플레이스 공동체에서 공존할 방법을 찾아갑니다. 허나 이웃들의 적대감은 점차 노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그때 호시탐탐 로레인을 괴롭힐 기회를 노리던 동네 불량한 청년들이 끝내 끔찍한 사건을 일으킵니다. 여기서 다시 활자화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결말입니다. 테레사와 로레인, 그리고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생생한 이야기는 책을 덮은 후에도 독자들을 잠식합니다. 좋은 소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건한 끔찍함을, 감히 여러분에게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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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 브루그먼 『알렉스, 소년에서 소녀로』(또하나의문화, 2015/원작2013)

 

 주인공 알렉스는 간성(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특질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경우, intersex)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알렉스를 남자 아이로 키우지만 알렉스는 스스로를 여자로 생각하며 자라왔습니다. 사실 성별이란 다른 사람들에게만 중요할 뿐, 알렉스 자신에겐 “희끄무레한 회색” 정도로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알렉스는 ‘독특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담당 의사도 모두 알렉스를 “교통사고 보듯” 신기한 눈으로 탐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명랑하게 제 삶을 꾸려 나가는 알렉스의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지요.

 

 사실 이 소설은 알렉스가 새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시작됩니다. 이전 학교에서 알렉스는 또래 아이들의 무지한 혐오 범죄에 공격받았고, 불가피하게 전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소수자 혐오 범죄에서 트랜스젠더 피해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정말 알렉스의 말 그대로 사람들은 “[여자인지 남자인지가] 헛갈리면 기분 나빠”하고 “판단하기 어려우면 불쾌해”하는 단순무지를 보여주곤 하니까요. 하지만 전학을 온 후 알렉스는 또다른 벽에 부딪칩니다. 바로 가족이죠. 여학생 교복을 입겠다고 선언하는 알렉스에게, 부모님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가장 중요한 공동체인 ‘학교’와 ‘가족’으로부터, 알렉스는 원하는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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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나비길」(『황천기담』[문학동네, 2014] 수록 중편)

 

 한국문학에서는 혐오를 극복하고 온전히 살아남은 연인이 행복한 삶을 살았더라는 이야기를 분명히 전하는 소설은 찾기 어렵습니다. 임철우의 2005년작 중편 소설 「나비길」도 예외는 아니지만, 이 소설은 있음직한 혐오폭력에 대해 디나이얼로서 살아남은 연인의 입장으로 쓰였기 때문에 아이다호데이에 읽을 책으로 권합니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나비를 몰고다니기 때문에 나비선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기병대와 동네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양씨입니다. 중학교 선생으로 부임한 기병대를 처음 본 날부터 양씨는 그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양씨가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유부남임에도 그와 기병대는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그런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마을에 돌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내가 그 사실을 물어오자 양씨는 겁을 내며 기병대를 의도적으로 멀리하지요.

 

 양씨가 기병대를 멀리하는 데에는 군대에서 아웃팅당한 경험이 크게 작용합니다. 이번에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서는 안 되겠기에, 양씨는 이후 나비선생이 하지도 않은 잘못으로 비난을 받는대도 외면합니다. 기병대에게 붙은 죄목은 공동체에서 진위가 불분명한 소문이 한 사람을 파괴하는 줄거리를 가진 영화 <더헌트>를 연상시킵니다. 기병대가 누명을 쓰는 이유는 성소수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발생한 작은 오해들입니다. 사소한 편견과 수군대는 뒷담화들이 모여 어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지 같이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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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창비, 2014)

 

 뜨뜻미지근한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며 살아가는 주인공 소라, 나나, 나기. 소라, 나나의 오빠같은 위치에서 가장 어른스러워보이는 그의 사랑 방식은 소라나 나나보다는 애자와 닮아있습니다.

 

 사랑에 전심전력을 다하느라 껍데기만 남아있는 듯한 애자 밑에서 자라며 어느덧 세상을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채워버리고 마는 소라와 나나와 달리 나기는 열네살 청소년기부터 어른이 된 현재까지 동급생인 ‘너’를 뜨겁게 갈망합니다. 하지만 너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그의 사랑은 너와 사회의 모욕과 폭력으로 점철됩니다. 보답받지 못한 사랑을 자기 혐오와 너에 대한 애증으로 채워나가는 나기와 그러한 나기의 끈질긴 시선과 애정에 일정 거리를 두며 폭력과 혐오만을 보여주는 너의 관계는 일방적인 성소수자 혐오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와는 사뭇 달라보입니다. 나기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폭력에 대한 온전한 껴안음. 이를 통해 너의 괴물스러움도 흐릿해지고 있지 않나 합니다.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각각 또 다른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사랑을 하지 않는 여자,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기에 미혼모를 선택한 여자, 그리고 고통받는 사랑을 선택한 성소수자인 남자의 이야기로 시종일관 밝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공동체가 있기에 계속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은 조용하지만 처연하게 마음을 서걱거리게 합니다. 이런 작은 부족들이 세상에 있다고, 그들이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나기와 그녀들의 삶의 철학을 성소수자 혐오자들에게 들려주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뿐인 부족일 수 있다, 이를 이해하지 않고 상대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괴물이 되고 만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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