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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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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 <런던의 안식월> (바람/2014)

 

인터파크도서가 주최한 2014년 제1회 K-오서 어워즈 ‘여행소설’ 부문 당선작이다. 여행지에서 읽으면 좋은 책으로 여행소설이 떠올랐다니, 너무 진부한가? 하지만 주인공이 런던에서 맞은 한 달간의 안식월은, 게이 커플 데런과 쳰을 만나면서 새로운 빛깔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티베트 독립과 동성혼 합법화 투쟁이라는 현실의 무게는 당신의 여행가방 안에서 조금 더 달콤한 이야기로 바뀔지 모른다. 매력적인 게이 캐릭터들이 여행의 동반자로 함께한다. 이 책에서 만나는 생생한 런던의 거리를 직접 걸으며 읽어보는 건 어떨지.

 

[본문 엿보기]

 

어느새 런던에 온 지 열흘이 넘었다. 티베트 관련 시위와 동성 결혼 합법화 시위는 하루 건너 하루 꼴로 계속되고 있었고, 쳰을 따라 시위대 꽁무니를 따라다니다가 얼결에 ‘FREE TIBET’라 적힌 피켓을 대신 들고 행진하기도 했다.

동성 결혼 합법화 시위 때는 쳰과 또래가 비슷한 남자들이 돌아가며 드랙퀸 분장을 하기도 했고 쳰이 반라 차림이 되는 적도 있었다. 그리고 쳰 등에 내가 직접 서툰 솜씨로 ‘나는 부끄럽지 않다, 다만 두려울 뿐이다’라는 문구를 적어주기도 했다.

티베트인 시위에는 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여하기라도 했지만 동성 결혼 합법화 시위 때는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쳰은 우리 사이에 놓인 거리가 자신들이 없애고자 하는 딱 그만큼의 거리라고 했다. 솔직히 드랙퀸이나 반라 차림도 이 거리감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얘기하자 쳰은 제발 데런을 닮아가지 말라고 말했다.

런던에 온 목적이 조금씩 희미해질수록 두려움은 불쑥 더 거세게 고개를 들곤 했다. 그것은 이곳에 온 목적을 절대 잊지 말라는 경고 같았다. 시위대를 따라가는 동안이나 갤러리에서 쳰과 농담 섞인 대화를 주고받을 때, 혹은 데런과 향수 노트에 대해 얘기할 때는 별다른 감정이나 상념이 끼어들지 않았다. 데런은 두려움보다 외로움이 더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고, 쳰은 두려움이나 외로움 모두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pp.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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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앤셔 <아쿠아 마린> (민음IN/2006, 原1992)

 

푸른 물의 이미지로 가득한 레즈비언 문학.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여자 수영 100미터 자유형 결승전에서, 금메달 유망주 ‘제인’이 라이벌인 ‘마티’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레즈비언 청소년의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아주 곤란하다. 고향에 돌아온 제시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에 따라 세 가지 각기 다른 결말이 제시되기 때문! 레즈비언판 인생 극장이라고 할 만한데, 레즈비언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사회적 무게감을 아주 노련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시원한 푸른색의 표지만 봐도 수영장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여름에 읽으면 제격인 소설.

 

[본문 엿보기]

 

자기 안에 이런 특별한 감정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다. 마치 사랑에 취한 듯하다. 그리고 이 사랑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다. 영구적이고 실재하는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이다. 목덜미에 소름을 끼치게 하고 다른 모든 것을 위태롭게 만드는, 그런 짜증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이제 지난 일이다. 예전의 일이 완전히 차단됐다는 것을 제시는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그녀는 그것을 물로 만든 벽 너머에 두었다. 그 벽은 제시가 살고 있는 인생의 경계선이다. 그 너머에, 그녀가 택하기를 거부한 것들이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다. 예를 들면 웨인 같은.

그리고 선택되지 않은 것들도 거기에 있다. 비록 뚜렷이 볼 수는 없더라도 그것들이 물의 벽 너머에서 요동치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가 만나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운명에 맞서 밀고 나가지 않은 길도 있다.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안다. 비록 부재의 형태, 벽 너머에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그림자이긴 하지만.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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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유제디니스 <미들섹스> (2권, 민음사/2004, 原2004)

 

휴가철의 추천문학이라 하면 꼭 딴지거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휴가철에 책을 읽냐고. 좋다. 그럼 바꿔 말해보자. 휴가철에 책을 읽을 정도의 독서광이라면, 이 정도 책은 ‘정복’해줘야 하지 않을까? 인터섹스인 그리스계 유대인 칼/리오페의 이야기를 400페이지씩 두 권, 총 800페이지를 따라 완독하고 나면, 정복감(?)뿐 아니라 이렇게나 좋은 책을 읽게 됐다는 만족감까지 더해질 것이다. 젠더와 섹슈얼리티, 전통/현대, 이민가족, 인종 문제 등을 맛있게 버무린 수작이며 2004년 퓰리처 수상작이기도.

 

[본문 엿보기]

 

처음부터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이상한 균형이 존재했다. 내가 첫울음을 터뜨렸을 때 할아버지는 벙어리가 되었고, 할아버지가 시각, 미각, 청각, 사고력, 심지어 기억력을 잃어 가는 동안 난 시각, 미각, 청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심지어 내가 보거나 먹거나 하지 않았던 것까지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시속 200킬로미터의 서브를 날리는 테니스 선수의 재능처럼 내게는 성(性)을 초월하여 대화하는 능력과 한 가지 성에 국한된 단일 시각이 아니라 두 개의 성을 아우르는 입체경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능력이 잠재돼 있었다. 그래서 장례식이 끝난 뒤에 나는 그리스식 정원에 차려진 테이블에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의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의 파도에 압도되었다. 그는 말을 하면 울음이 나올까 봐 식사하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에다 빵만 밀어 넣었다. 어머니는 챕터 일레븐과 나에 대한 필사적인 사랑에 사로잡혀 계속해서 우리들을 끌어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죽음에 대항하는 유일한 진통제는 아이들이었으므로. (1권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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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월요일이 없는 소년> (들녘/2015)

 

휴가철만큼 신간 읽기 좋은 때도 없다. 특히 여름에 읽기 좋은 미스터리 장르라면 더더욱! 여름의 한가운데 출판된 이 소설의 주인공은 MTF 트랜스젠더 ‘은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던 연쇄살인의 여섯 번째 희생자에 대한 뉴스를 보고, 직접 타임루프에 뛰어들면서 연쇄살인 뒤에 숨겨진 광적인 종교의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작가는 트랜스젠더 문채은씨의 사연을 보고 자신과 세상의 편견을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됐다는데, 타임루프-트랜스젠더-종교라는 소재를 긴장감 있게 잘 풀어냈다는 평.

 

[나도 아직 읽지 못해 인용문이 없다. 얼른 읽고 싶다. 매일 책 읽는 휴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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