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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 요약되지 않는 삶 — 버나딘 에바리스토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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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배 댓글 0건 작성일 20-11-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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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딘 에바리스토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Girl, Woman, Other)

하윤숙 역, 비채, 2020(2019)




퀴어 창작자들의 고민을 접하곤 했다. 내가 퀴어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가. 아직 절대적인 수가 적고 퀴어가 특수한 기호로 소비되는 현장에서, 창작자들은 대표성의 압박을 받는다. 대표할 수 없다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동시에 그 의구심이 무책임과 회피는 아닐지 우려한다. 퀴어로서의 나를 아끼고 전체로서의 퀴어 커뮤니티를 사랑하지만 나와 전체가 동일시되는 순간 느껴지는 당혹감이 있다. 이것은 아직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은 것 같다.


나에게도 퀴어를 집단화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 퀴어 커뮤니티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신뢰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커뮤니티 안에서 나는 늘 개개인과 충돌해왔다. 퀴어를 집단으로 규정짓는 순간 이러한 개별적인 충돌은 축소되거나 지워진다. 그래서 항상 ‘다양한 퀴어 문학’이 필요하다고 답해왔다. 이때 다양성이란 단순히 숫자나 종류가 아니라(물론 중요하지만), 흔히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집단에 의도적인 흠집을 내고, 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갈등(과 때로는 화해)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일.


이를테면 단순히 ‘흑인 여성’이나 ‘성소수자’라는 말에 ‘퉁쳐지지’ 않는 삶.

요약되지 않는 삶.


집단이 아닌 개인을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당연함도 아직은 소원한 것 같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을 읽고, 체한 구석이 내려앉는 것처럼 시원했으니 말이다.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요약을 거부한다. 제목 그대로 10대 소녀부터 90대 여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이 책은 ‘영국의 흑인 여성’이라는 집단 내부, 퀴어 커뮤니티 내부, 가족들과 친구 집단 내부를 속속들이 파고든다. 작가는 이들의 삶을 요약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깔끔한 서사와 문장구조 대신에 마침표 없는 산문시 형식(작가는 ‘퓨전 픽션’으로 일컬었다)을 택했다.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에게도 이름과 배경을 주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인물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연결 지었다. 이런 소설 앞에서 줄거리는 큰 의미가 없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소설 속 인물들이 하나같이 결점 투성이라는 점이 좋았다. 그것도 서로 다른 결점, 진절머리 나게 리얼한 결점 말이다. 이들은 특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불완전하기에 부딪치고 섞인다.


소설의 구심점이 되는 연극 연출가 앰마는 ‘주류’ 이야기 대신 흑인 레즈비언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열심인 열혈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자 자유연애주의자다. 그러나 딸 야즈에 대해서라면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치마는 왜 그렇게 짧은지, 딸이 만나는 남자는 어떤 사람인지, 어디서 어떻게 놀다 올 생각인 건지. 그러나 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은 페미니스트로서 용납되지 않아 고민한다. 힘겹게 한 마디를 하면 딸에게 ‘페미나치’라는 말을 듣는다. 야즈는 앰마를 구식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며, ‘나는 인도주의자고 그건 페미니즘보다 훨씬 높은 가치’라고 주장한다. ‘남자 여자, 그런 성별 이분법적인 구분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질 거야. 미래엔 모두 논바이너리가 될 거니까.’ 앰마와 야즈는 닮았지만 다르다. 이렇게나 다르다.


야즈와 모건의 사례도 있다. 모건은 영국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해 인터넷을 뒤졌고, 거기서 만난 비비에게 일종의 ‘페미니즘 101’ 교육을 받고 젠더프리로 정체화한다. 이후 젠더/섹슈얼리티 이슈를 퍼뜨리면서 SNS 파워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어느날 대학 강연을 제안 받고 난생 처음 대학 강단에 선다. 시골 풍경이 편한 모건에게 이 환경은 많이 낯설다. 그곳에는 강연을 들으러 온 야즈와 친구들이 있었다.

강연이 끝난 후 야즈가 다가온다. ‘저도 논바이너리가 되려고 생각 중이에요.’ 어릴 때부터 젠더 디스포리아를 경험했던 모건에게는 정체성이 선택의 대상이라는 말로 들린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하지만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더욱이 야즈는 시골의 환경도 상상하지 못한다. 야즈가 말한다. “장담하는데 당신은 런던에 있는 걸 좋아하는 게 분명해요, 여기로 올 거죠?” 하지만 모건은 사람들이 불편하고 “멀리 인적이 끊긴 곳”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낀다. 이처럼 급진적 퀴어 페미니스트라는 집단으로 단순히 묶어낼 수 없는 이들의 결이, 요약되는 대신 펼쳐진다.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의 데이트 폭력 문제는 어떤가. 폭력 문제에서 어떤 이들은 지정성별 남성들 전체를 가해자로 묶어내고, 지정성별 여성들만 있는 공간은 안전하다고 믿는다, 아니 오해한다. 그러나 폭력은 어디에나 있다. 물리적 폭력과 성폭력은 물론이고 이 소설에서 다뤄지듯 가스라이팅을 이용한 정서적인 폭력도 있다.

어릴 때부터 정체성을 확립한 도미니크는 키가 크고 당당한 페미니스트 은징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둘은 급진적 페미니즘 분리주의자들이 설립한 ‘스피릿 문’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이곳은 남성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여자들만의 땅이다. 안전하고 행복하려고 설립된 곳. 그런데 은징가의 집착이 시작된다. 다른 여자들과의 대화를 막는다. 읽는 책을 뺏는다. 집안일도 산책도 어떤 지적 사고도 하지 않도록 종용한다. 


나랑 있으면 안전해, 은징가가 말했지만 도미니크는 특별히 불안한 게 없었다

넌 완전해져, 도미니크는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나랑 있으면 넌 집에 있는 거야, 집은 사람이거든, 장소가 아니고 말이야

은징가는 노예제 반대 활동가 소저너 트루스의 이름을 따서 도미니크에게 새로 페미니스트 세례명을 지어주는 문제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략)

내 이름이 좋아

그럼 계속 써, 어쨌든 난 소저너라고 부를 거야, 자기 (130-131쪽)

당연한 이야기, 폭력은 어디서나 일어나며 안전한 집단은 없다. 당연하지만 잊히는 이야기, 개인은 충돌하고 오해한다. 혐오와 경멸은 필연 같다.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가까운 내부이기에 더더욱.


소설은 묻는다. 소통이 가능한가. 화해가, 사랑이 가능한가.

소설이 묻는 질문의 답을 소설에서 찾는다. 난데없이 집단으로 ‘퉁쳐질’ 때, 그 집단 안의 충돌이 제거된 듯 느껴질 때,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이 빼앗긴 것처럼 막막할 때. 나는 소설을 이렇게 엮어내는 작가의 시선에 용기를 얻는다. 개인으로서의 우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서툰지 깨달은 다음에야 함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할 수 없는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각각의 진짜 이야기. 구석구석, 아직 많다.




보배

퀴어문학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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