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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 감동적이지 않은, 불친절한, 정확하고 매혹적인 - 오션 브엉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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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배 댓글 0건 작성일 19-11-1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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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브엉 저, 김목인 역, 시공사, 2019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Ocean Vuong, 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 2019)

 


언젠가 엄마는 제게 사람의 눈이야말로 신이 만든 가장 외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셨죠. 어떻게 세상의 그 많은 것들이 안구 위를 스쳐 가고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느냐고. 눈은, 구멍 속에 혼자 머물며, 1인치 떨어진 곳에 똑같이 생긴 하나, 자기만큼이나 굶주리고 텅 비어 있는 또 하나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죠. ?
(중략)
엄마, 당신은 어머니예요. 괴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 역시 마찬가지죠. 그게 제가 엄마를 외면하지 않는 이유예요. 그것이 제가 신의 가장 외로운 피조물을 지니고 와 그 안에 엄마를 넣어둔 이유죠. (27-30쪽)?
 
  1.
  매혹적이다.
  사실상 이것이 전부다.
?
?
  2.
  그럼에도 첨언한다면 매혹과 감동의 차이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동은 인류애의 전형과 맞닿아 있다. 감동이란 말은 가족애를 강조한 명절 시즌의 영화 속에, 고아원을 방문한 정치인의 입에, 동성애 '치료' 후기가 담긴 기사 속에도 있다.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 포즈를 취하지만 필연적인 거리감을 내재한다. 우리는 멀리 있는 것에만 감동한다. 감동(moving)은 바라보는 나를 잠깐 움직였다가 제자리에 세워둔다.
  사실상 대부분의 독서 경험은 감동만으로 충분하다. 매혹을 만나기 전까지는.
  매혹은 '마음이 사로잡혀 넘아간다'는 뜻이다. 몇 되지 않는 매혹의 경험은 나를 붙잡아(captivating) 홀린다(enchanting). 매혹과 만나면 더이상 자신의 세계에 발딛고 서있기 어려워진다. 속절없이, 넘어간다.
?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를 읽은 풍경을 기억한다. 그날의 빛의 각도와 냄새와 소리가 여전히 남아있다. 책은 활자만이 아니다. 독서는 결국 경험이고 감상은 결국 기억이다. 삶의 어느 순간 문득 이 장면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깨닫는 것처럼, 어떤 책은 읽는 도중에도 깊이 들어서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공의 삶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삶을 ?만났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바로 이런 책을 읽기 위해 수백권의 형편없는 책을 견뎌 왔다는 건방진 생각도 한다. 나는 이런 책에 매혹이라는 말을 붙인다. 오션 브엉은 물론 더 정확한 방식으로 매혹에 답한다.
?
?
  3.
  화자는 '리틀 독'이란 별명을 가진 베트남계 미국인 '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스쳐갔던 여러 기억을 종횡무진으로 풀어내면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표면상 그것뿐인 소설. 편지이자 자서전이자 일기이자 소설이자 시이기도 한 독특한 이야기. 선명한 줄거리보다는 감각과 인상을 신뢰하는 다소 불친절한 글. 그러나 이 소설의 독특함(혹은 이상함queerness)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정확하게 직조되었다. 바로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다. 우리는 매혹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둘러싼 이런저런 기억을 늘어놓을 뿐이다. 증언이 될 수 없는 후일담, 그것이 매혹 앞에서 가능한 유일한 형식인지 모른다.
그의 기억엔 여러 움직임과 빛깔이 뒤섞여 있다. '나'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 전쟁통의 베트남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성노동자로 일하던 할머니, 제 혈연이 아닌 가족에 대한 사랑을 조용히 지켜가는 할아버지, '나'가 담배농장에서 일하다 만난 '첫 사람' 트레버,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는 영어를 거의 읽지 못한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어머니가 영어를 거의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읽히지 않을 편지를 쓴다. 수신되지 않는 사어(死語), 어쩌면 매혹을 말하는 최선의 방법.
?
엄마가 이 글을 읽으실 일이 없다는 불가능성. 그것이 저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이에요. (167쪽)
저는 엄마께 난파선만큼의 이야기도 안 하고 있어요.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고, 마지막에서야 판독이 가능한. (274쪽)
  ?소재로만 보면 가족, 전쟁, 민족, 언어, 성과 사랑. 사건으로 보면 죽음, 혐오범죄, 이별과 불가해. 그러나 아픈 소설이 아니다. 고통스러운 삶도, '감동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 없게 하는 정확함이 이 소설에 있다. 몸 때문에 부딪치고 마음은 읽을 수 없는 순간들이 쌓여간다. 그리고 언어는 영영 우리를 비껴간다. 슬플 때 슬프다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슬프지 않다는 증거이거나 슬프다는 말 이외에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슬프다는 말은 가장 슬프지 않다. '나'의 말대로 꽃이 잠깐 피는 순간에 이름 붙여졌다면, 그렇게 대부분의 이름이 아주 잠깐 동안에만 유효한 것이라면, 우리는 지상에서 아주 잠깐만 매혹적이다.
?
  언어가 이렇게 부족한데 감히, 어떻게. 사실상 이 '감히 어떻게'가 바틀비적 소설을 만들었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 바틀비는 불합리한 현실 앞에서 "안 하고 싶습니다(I prefer not to.)"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에겐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지는데, 이 소설의 '나' 역시 그렇다. 이야기를 단순화하지 않을 것(그럴 수 없으므로), 사람을 깔끔하게 묘사하지 않을 것(도무지 그러지 못하므로), 기억을 미련없이 단절시키지 않을 것(감히, 어떻게).
?
저는 내려놓았어요. 그게 바로 글쓰기예요. 온갖 무의미를 지나 밑으로 아주 낮게 내려가면, 세상이 자비롭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죠. 작은 것들로 만들어진 더 큰 시야, 보푸라기가 갑자기 정확히 안구 크기인 거대한 안개가 되는 거예요. (중략)
그것이 예술의 정체일까요? 우리가 느끼는 것이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감동하는 것. 결국에는 그것이, 갈망 속에서 우리를 발견하는 다른 누군가일 때에도. (272?쪽)?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간 적이 있는가. 기억 속의 사람들의 말, 냄새, 색깔, 눈빛을 집요하게 좇아본 적이 있는가. 그만큼 성실한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그건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이란 말을 나는 변명으로 쓰고, 어떤 작가는 어려운 일이라서 더 애를 쓴다. 아무 소용이 없어도, "온갖 무의미를 지나 밑으로 아주 작게 내려가면" 찾아오는 새로운 시각, 그 "정확히 안구 크기인 거대한 안개" 속에서 가 닿지 않을 편지를 쓴다. 지상 위 잠깐의 매혹을 온 에너지로 담아낸다. 소설은 매혹을 영원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한다. 감동적이지 않고, 편안하지 않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야기. 그렇기에 삶과 말의 속성을 가장 닮은 이야기. 
  어쩔 수 없이, 매혹적이다.



보배
퀴어문학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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