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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라는 경계선―김준영의 『경계선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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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복숭아 댓글 0건 작성일 17-01-0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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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라는 경계선―김준영의 『경계선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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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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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특성상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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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소개에 걸맞게 김준영의 『경계선의 아이들』은 한 사립대학 교수가 살해되면서 시작된다.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장영동' 형사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아이의 흔적을 쫓지만 살인사건이란 게 늘상 그렇듯이 쉽지만은 않다. 더구나 조사 끝에 찾아낸?유력한 용의자는 '현수'라는 이름의 남자아이다. 금방 끝이 날 것만 같았던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장영동' 형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한 끝에 그는 마침내 진실에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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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자들은?작품의 맨 앞부분에 등장했던?'수영'이라는 아이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취하고 있는 장르적 스탠스 상 그의 성적 정체성은 미스터리에 가려져 있다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흥미로운 건 '수영'의 성적 지향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수영'과 '현수'와의 관계에 대해서 서술할 때 가볍게 언급되던 '수영'의 성적 지향은 이야기가 끝을 향해 나아갈수록 점점 더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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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최근 얼마간은 각자의 사정으로 조금씩 멀어져가는 중이었다. 한동안 연락마저 끊고 지냈지만 그럼에도 최악의 순간 선뜻 수영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현수의 얼굴이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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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을 결심한 날, 거하게 다투고 집을 나서던 자신을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을 떠올리며 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싫어도 할 수 없어. 당장 거기밖에는 갈 곳이 없잖아. 당분간은 얌전히 있는 게 좋아. 어제 일은 모두 잊고."

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차분하게 다독이듯 말하는 현수에게서 듬직한 어른의 느낌이 묻어난다. 서로 깔깔거리며 놀던 친구는 어느새 멀찌감치 그만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른 채 방황하며 제자리걸음 중인 수영과는 달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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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애들이 말이?많아."

"무슨 말?"

관자놀이 근처를 긁적이며 현수는 관성적으로 되물었다.

"너랑 수영이 이야기.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고…"

(…)

"뭐라냐."

"물론 아니라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애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게다가 요즘 수영이 관련해서 안 좋은 소문들도 계속 돌고. 학교 애들이 봤다는데, 늙은 아저씨랑 같이 모텔 들어가는 거. 정말 더럽지 않니?"

"다 했냐? 나윤미."

현수는 찌푸린 얼굴로 소녀를 바라봤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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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수영'의 성적 지향은 남성성을 향한 것이다. 그런데 '수영'의 성별 정체성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서술 트릭과는 별개로 모호하게 느껴진다. 어느 정도 미스터리 장르에 익숙한 독자라면 '수영'의 성별, 즉 젠더가?남성이라는 것은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한 독자라도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된다면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나는 젠더와는 달리 자라면서 스스로 정체화하게 되는 성별 정체성은 다른 것이다. 즉 읽다 보면 '수영'이 남성으로서 동성에게 끌리는 동성애자인지 아니면 여성으로서 이성에게 끌리는 트렌스젠더인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수영'의 정별 정체성을 알려주는 문장은 '(……) 생각지도 못한 행색으로 자신 앞에 선 수영의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그것은 너무나 불안정하고 아슬아슬한 모습이었다. 현수에게는 그 순간 수영의 모습이 가느다란 선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꿈과 현실,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 소년과 소녀 그리고 친구와 연인.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신기루처럼 수영이 흔들리고 있었다.(p.113~114)'라는 문장 뿐이다. '수영'이 크로스드레싱이 등장하긴 하지만, 크로스드레싱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트렌스젠더라고 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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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영'의 젠더와는 달리 성별 정체성은 작품 내에서 곁가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젠더가 중요한 트릭으로 작용하는 이상 이와 관련된 성별 정체성은?어떤 의미로는 작품 전체를 꿰뚫는 중요한 화두다. 쉽지 않은 소재인만큼 분명 어느 정도 한계는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작품 말미에서 모든 것을 알게 된 '장영동' 형사는 '수영'과 '현수'에 대해 "응, 사정이 딱하잖아. 착한 애야. 저녀석도 그리고 살인범도(p.107)"라고 후배에게 말한다.?'장영동' 형사는?실상을 알기 전에도 줄곧 그 둘을 따뜻하게 대한다. 이것은 곧 작가가?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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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연습 때문이죠 뭐. 그런데 취소됐어요. 무기한 연기랍니다. 똥개 훈련도 아니고."

김 형사는 추운 듯 잔뜩?목을 움츠린 채 투덜거렸다.

"연기라니, 왜?"

"종교 단체에서 반발이 있었나봐요. 소수자 권익 보호 어쩌고 하는 행사다보니까 그쪽에서 민감한 부분도 걸리는 게 있었거든요. 대충 뭉개고 가려 한 모양인데, 그래도 나라에서 주최하는 행사인데 어찌 이단을 옹호하느냐면서 난리 피우는 데야. 아휴, 저야 잘됐죠 뭐. 그대로 강행했으면 그 아줌마 아저씨들 상대했어야 하니까."

장 형사는 짐작이 간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김 형사가 차출된 행사는 지역에 새로이 설립될 소수자 인권 보호 센터 발대식이었다. 얼마 전 높으신 분이 그와 관련하여 힘을 실은 발언을 하면서 위에서 잔뜩 관심을 기울이는 터였기에 상당히 이슈가 되었고 행사도 예정보다 규모가 훨씬 커져버린 터였다. 하지만 결국 엉뚱한 이유로 흐지부지될 모양이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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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거 아시잖아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뇌까리는 현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뭐가 말이냐? 네가 감싸는 그 친구의 실체, 아니면 너와의 관계? 늙다리 아저씨라고 무시하지 말거라. 이래봬도 형사 생활 하면서 별의별 사람 다 만나봤어. 다른 늙다리들보다는 마인드가 깨어 있는 꼰대라는 말이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거지. 물론 여전히 고정관념이란 틀 속에서 살고 있기는 하다만. 나윤미한테 최수영이란 여학생 어떤 애였냐고 물었다가 망신을 당했으니 말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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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술 트릭 기법의 근본 원리가 그렇듯 편견에 관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을 겁니다. 아이들은 편견을 극복하며 성장하고, 형사는 편견을 깨면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진짜 세상도 너무 많은 편견들이 가득하다는 의심은 지울 수 없습니다. 저 같은 글쟁이가 독자들을 속여먹을 수 있을 정도의 딱 그만큼의 편견만이 남은 세상이 언젠가는 오리라 기대하며 이 소설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게 해준 분들 그리고 그것을 읽어주신 모든 이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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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수영'의 젠더나 성별 정체성이 서술트릭을 위한 도구처럼 보이는 부분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바로 위에서 인용한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편견'에 대해 언급한다. 작가의 이런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에, 나는 분명 작가는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김준영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이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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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준영, 『경계선의 아이들』, 에픽로그, 2016, p.17.

2) 위의 책, p.19.

3) 위의 책, p.27~28.

4) 위의 책, p.87~88.

5) 위의 책, p.105.

6) 위의 책, 「작가의 말」,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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