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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속인 건 나의 욕망, 환상, 그리고 사랑 ― 데이비드 헨리 황 『M. Butter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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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림 댓글 0건 작성일 16-07-1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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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_8986175568_f.jpg? 데이비드 헨리 황, 이희원 옮김,?『M. Butterfly』 ?(도서출판 동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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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르네 갈리마르. 재중 프랑스 외교관이라는 사실 외에는 그다지 특이한 점을 찾아 볼 수 없는, 소심하고 평범한 남자. 그런 르네가 한 여자를 만난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중국 오페라 배우, 송 릴링. 그녀는 르네가 경험해보지 못한 '동양적 매력'으로 그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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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담배를 꺼내어 문다.) 신사가 되어 주실래요? ?담뱃불을 붙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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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리마르는 더듬거리며 성냥을 찾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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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마르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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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이며) ?손해보셨네요. 제 담배에 불을 붙여주셨더라면, 당신 눈가에 담배 연기를 내뿜어

주었을텐데……. 이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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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는 그녀를 만나 사랑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져있던 남성성 (이 부분도 역시 르네의 '환상'에 불과하다)?을 확인한다. 르네의 세상에서 송은 그의 사랑이 없으면 결국 죽음을 택할, 지고지순한 ‘나비’였다. 르네는 새장처럼 좁은 환상 속에 갇혀 자신을 향한 송의 사랑을 맹신한다, 무려 20년 동안. 그 맹신은 송이 중국에서 파견된 스파이였다는 사실, 게다가 그의 생물학적 성별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르네가 직면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에 그는 송의 진짜 모습, 그의 참 존재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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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Butterfly』는 많은 이야기들을 내포하고 있는 희곡이다. 그저 단순하게 ‘여장으로 외교관을 사로잡은 남자 스파이와 그 사실을 20년 동안 눈치 채지 못한, 머저리 같은 프랑스 남자의 이야기’라고 정의 내리기에는 작품 자체가 가진 무게감이 꽤나?무겁다. 남성의 음경에서 시작되는 담론은 실속은 없고 허세만 가득한 그들의 권위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동양에 대해 서양이 가지고 있는 억지스럽고, 역겨운 우월의식을 ‘르네’와 ‘송’이라는 두 그릇에 담아낸다. 또한 가끔은 재치 있는 말장난으로, 또 무대라는 공간적 한계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상황 설정으로 극의 쉼표를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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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송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변모하는 장면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무대 위에서’, 그것도 그 사실을 ‘관객에게 직접 통보한 후’, 송은 가발을 벗고, 머리를 매만지고, 수트를 입는다.?이는 송이 그의 존재를 부정하려하는 르네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직접 응시하게 만드는 장면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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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마르

제발.?그건 불필요한 일이오.?난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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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인가요? ?제가 누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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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마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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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실제로는 믿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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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마르

아니오, 알고 있소! ?난 언제나 나의 행복이 일시적이고 나의 사랑이?속임수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알고 있었소.

그런데 의도적으로 그 지식을?내버렸던 거요. ?기다림을 참아내기 위해선 별 수 없었던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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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마르 씨, 이제 그 기다림이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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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은 속옷을 벗는다. 그는 알몸이다. 정적. 서서히 송과?우리는 갈리마르의 흐느낌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은 웃음 소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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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야 독자 혹은 관객들 역시도 송의 사실적 존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독자 혹은 관객들의 심리 역시?(송이 남성이라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을지라도) 그렇게 반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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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작품을 둘러싼 많은 역사적 사실이나 일상에서 접근하기 힘든 소재보다 나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지점은 따로 있었다. ‘송은 정말로 르네를 사랑했을까?’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을 르네에게 과감히 드러낸 뒤, 그를 대하는 송의 태도는 다소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송은 분명 르네를 사랑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송은 르네에게 환상으로서의 자신을 그토록 주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환상 속에서라도 그의 ‘나비’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그 시작이 정치적 꼼수의 발판이었을지라도. 르네를 향해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라고 소리치던 송의 그 애절한 눈빛은 르네를 향한 사랑의 증거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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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마르

(...) 이 진실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평생 동안 저지른 실수에 대한 희생?말입니다. 저의 실수는 간단하고 분명했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남자가?비열한 자식이고, 별 볼일 없는 건달이라는 사실입니다. (...) 저는 그자를?차주기는커녕 그자에게… 저의 사랑 전부를 바쳤습니다.?그렇습니다. 사랑. 그것을 왜 인정하지 못 하느냐구요? 그건 저를 산산이?해체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사랑이 제 판단력을 비뚤어?지게 했고, 제 눈을 멀게 했으며, 제 얼굴의 선마저도 다시 그었습니다…?마침내 거울을 바라보았습니다. 전 거기서… 한 여자의 얼굴 이외의 그 어떤?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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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녀들이 갈리마르에게 나비의 가발을 씌워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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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는 고백한다. 자신의 환상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나비’ 송을 얻으려는 욕망이 자기 자신을 속였다고. 결국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자신 안에 내재되어있는 극한의 욕망이라는 사실을 르네는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환상을 깨고 나와?스스로 ‘나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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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욕망이 스스로를 속였다는 사실을 성찰하고, 결국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환상에 기꺼이 헌정하는 어리석은 남자, 르네 갈리마르. 그를 보면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자기 자신을 비추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이윽고 르네에게 투영된 나의 모습에서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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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기꺼이 외면하고야 마는, 그래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내 안의 ‘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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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 (o00itism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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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젠더 팬섹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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